처음엔 다들 그런 줄 알았다
업무상 과거 아카이브 영상을 뒤져야 할 일이 생겼다. 회사 서버 구석에 처박혀 있던 파일들을 하나씩 열어보는데, 이게 웬걸. 윈도우 기본 플레이어로는 절반도 안 열린다. ‘코덱이 없습니다’라는 메시지만 무심하게 떠 있고, 어떤 건 소리만 나오고 화면은 까맣다. 처음엔 그냥 파일이 깨진 줄 알았다. 그래서 포기하려고 했는데, 옆자리 선배는 잘만 본단다. 그때부터였다. 내가 이 ‘재생 안 되는 파일’들과 싸우기 시작한 게.
사실 처음엔 그냥 가장 유명하다는 코덱 팩을 깔면 해결될 줄 알았다. 인터넷 검색하니 다들 ‘이거 하나면 끝’이라고 하길래 의심 없이 설치했다. 그런데 그게 내 첫 번째 실수였다. 설치하고 나니 웹 브라우저가 느려지고, 파일 탐색기 우클릭 메뉴가 지저분해졌다. 결정적으로 내가 열고 싶었던 그 오래된 WMV 파일은 여전히 화면이 깨졌다. 기술적으로 뭐가 꼬인 건지, 아니면 설정이 잘못된 건지 알 길이 없었다. 결국 시스템 복원을 하고 나서야 원래대로 돌아왔다. ‘그냥 다 되는 건 없구나’ 싶어 한숨이 나왔다.
코덱 팩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다
첫 번째 실패 이후, 나는 좀 더 신중해지기로 했다. 이번엔 아예 플레이어를 바꿔보기로 했다. 가볍다는 것부터 화려한 것까지 대여섯 개는 깔아본 것 같다. 어떤 건 광고가 너무 많아서 짜증이 났고, 어떤 건 한글 자막이 외계어처럼 깨져서 나왔다. 특히 어떤 플레이어는 고화질 영상을 돌릴 때마다 컴퓨터 팬 소리가 비행기 이륙하는 것처럼 커졌다. CPU 점유율이 90%를 찍는 걸 보고 바로 삭제했다. 내 업무용 노트북이 그렇게 고성능도 아닌데, 영상 하나 보겠다고 다른 작업을 못 하게 되는 건 주객전도니까.
그러다 문득 예전에 어디선가 ‘VLC는 만능 열쇠 같다’는 말을 들었던 게 기억났다. 오픈소스고, 별다른 설정 없이도 웬만한 건 다 돌아간다는 그 말. 사실 예전에도 한 번 써보긴 했는데, 디자인이 너무 투박해서 금방 지웠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지금 디자인 따질 때인가. 일단 화면이 나와야지. 그래서 다시 설치했다. 설치하자마자 아까 안 열리던 DivX랑 H.264 기반의 영상들을 넣어봤다. 허탈할 정도로 잘 나온다. ‘아, 진작 이거 쓸걸’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만능이라더니 왜 화면이 깨지지?
하지만 VLC도 완벽하진 않았다. 여기서 내 두 번째 시행착오가 시작됐다. 4K 고해상도 영상을 재생하는데, 화면이 뚝뚝 끊기더니 급기야 멈춰버렸다. 분명 ‘하드웨어 가속’을 지원한다고 알고 있었는데 왜 이럴까 싶었다. 설정에 들어가 보니 GPU를 활용해서 가속하는 옵션이 있었다. ‘당연히 켜야지’ 하고 체크했다. 그런데 이번엔 화면 전체가 분홍색으로 변하더니 프로그램이 튕겨버렸다.
순간 당황했다. ‘내 GPU가 너무 구린가?’ 아니면 ‘드라이버 문제인가?’ 싶어 한참을 구글링했다. 알고 보니 내가 가진 특정 인코딩 방식과 하드웨어 가속 옵션이 충돌을 일으키는 거였다. 똑똑하게 알아서 다 해줄 줄 알았는데, 때로는 소프트웨어 방식으로 전환하는 게 훨씬 안정적이라는 사실을 그때 깨달았다. 결국 하드웨어 가속을 ‘자동’에서 ‘비활성화’로 바꿨다가, 다시 특정 모드만 켜보는 식으로 서너 번을 더 시도했다. 결국 내 환경에 맞는 적정선을 찾긴 했지만, 그 과정에서 겪은 짜증은 말로 다 못 한다. 역시 ‘설정 없이 잘 돌아간다’는 말은 운이 좋을 때나 해당하는 소리였다.
싱크 맞추다 보니 어느새 새벽
영상은 나오는데, 이번엔 자막이 문제였다. 해외 클라이언트가 보내준 영상인데 자막 싱크가 미묘하게 1~2초 정도 안 맞았다. 이걸 다시 인코딩해서 싱크를 맞추자니 시간이 너무 걸릴 것 같았다. VLC 메뉴를 뒤져보니 자막 싱크 조절 기능이 있었다. 단축키 J와 K를 누르면 50밀리초 단위로 조절이 된다길래 신나게 눌렀다. 그런데 이게 생각보다 어렵더라. 오디오랑 입 모양을 보면서 맞추는데, 맞췄다 싶으면 다시 어긋나는 느낌이었다.
오디오 필터를 써서 소리를 좀 더 선명하게 키우고, 영상 필터로 어두운 부분을 밝게 조정하면서 자막을 맞추다 보니 어느새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사실 이건 도구의 문제라기보다 내 집착의 문제였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VLC니까 이 정도로 직관적으로 조절이 가능했지, 다른 프로그램이었으면 메뉴 들어가느라 더 고생했을 거다. DVD 파일이나 FLAC 같은 음원 파일도 척척 읽어내는 걸 보면서, ‘아 투박해도 실속은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스트리밍 주소(HTTP, UDP)를 직접 입력해서 영상을 끌어오는 기능도 시도해봤는데, 이건 회사 방화벽 때문인지 한 번에 안 돼서 애를 좀 먹었다. 결국 FTP 방식으로 우회해서 겨우 성공했다.
결국 돌고 돌아 VLC, 그런데…
지금은 일단 VLC를 기본 플레이어로 정착시켰다. MPEG, WMV 같은 낡은 포맷부터 AAC, MP3 같은 오디오까지 한 방에 해결되니까 편하긴 하다. 플러그인을 깔아서 웹 브라우저랑 연동도 해보고, 네트워크 기능을 활용해서 다른 팀원에게 방송 스트리밍처럼 영상을 쏴주기도 해봤다. 확실히 확장성 하나는 끝내준다. 다른 유료 프로그램이나 예쁜 UI의 플레이어들과 비교해보면, VLC는 마치 기름때 묻은 만능 맥가이버 칼 같다. 세련되지는 않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안 펴지는 칼날이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게 ‘인생 플레이어’냐고 묻는다면 그건 또 애매하다. 일단 UI는 여전히 2000년대 초반에 멈춰 있는 것 같고, 가끔 알 수 없는 이유로 자막 폰트가 뭉개질 때도 있다. 무엇보다 최신 HDR 영상 같은 걸 돌릴 때는 전용 플레이어보다 색감이 조금 탁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내가 설정을 잘못 만진 건지, 아니면 원래 그런 건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모든 상황에서 정답은 아니라는 뜻이다.
결국 어떤 환경에서도 최적인 도구는 없다. VLC가 만능인 것처럼 보여도, 어떤 영상에서는 오히려 다른 가벼운 플레이어가 나을 때도 있고, 어떤 때는 아예 전용 코덱을 깔아야 할 때도 있을 거다. 그래도 일단 ‘안 열리는 파일’을 만났을 때 가장 먼저 던져볼 수 있는 카드 하나를 챙겼다는 점에서는 만족한다. 물론 내일 아침에 또 다른 포맷의 영상이 안 열려서 삽질을 시작할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몇몇 고화질 영상의 끊김 현상은 숙제로 남겨두기로 했다. 세상엔 그냥 안 되는 일도 있는 법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