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은 많은데 들을 환경이 자꾸 흐트러질 때
로컬에 쌓아둔 음악 파일이 어느 순간부터 관리 대상이 되기 시작했다. 스트리밍 서비스로 거의 해결된다고 생각했지만, 공연 실황 FLAC 파일이나 오래전에 리핑해 둔 CD 음원은 결국 내 폴더 안에서 굴러다닌다. 문제는 듣는 행위보다 정리와 재생 환경 맞추는 데 시간이 더 들어간다는 점이었다.
처음엔 윈도우 기본 플레이어와 파일 탐색기 조합으로 버텼다. 폴더를 아티스트별로 나누고, 파일명 앞에 트랙 번호를 붙이고, 필요하면 수동으로 앨범아트를 넣는 식이었다. 곡 수가 300곡 정도일 땐 그럭저럭 버틸 만했지만 4,800곡쯤 넘어가니 금방 무너졌다. MP3, FLAC, AAC, Opus가 섞여 있고 태그 형식도 제각각이라 정렬 기준이 자꾸 꼬였다.
가장 불편했던 건 앨범 단위로 들을 때 흐름이 끊기는 순간이었다. 라이브 앨범이나 클래식 트랙에서 곡 사이에 아주 짧은 공백이 생기면 집중이 확 깨진다. 재생은 되는데 듣는 경험이 별로였고, 결국 파일은 많은데 손이 안 가는 상태가 됐다.
먼저 시도한 방법과 왜 오래 못 갔는지
처음엔 VLC로 해결해 보려 했다. 형식 가리지 않고 재생은 잘 되고 설치도 간단해서 시작하기는 쉬웠다. 다만 음악 전용으로 오래 쓰기엔 라이브러리 정리 감각이 내 기준과 안 맞았다. 재생은 되지만 태그를 손보거나 앨범 단위로 정리하는 흐름이 거칠었고, 듣다가 관리 작업으로 넘어가는 순간 손이 많이 갔다.
그다음엔 MusicBee도 써봤다. 인터페이스가 친절하고 초반 진입장벽이 낮아서, 정리된 라이브러리를 보고 싶다면 오히려 이쪽이 더 편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런데 내 경우에는 설정을 조금만 세밀하게 건드리려 해도 메뉴가 많아져서 금방 피곤해졌다. 예를 들어 음량 균일화, 파일명 패턴 변경, 특정 폴더만 라이브러리에서 제외하는 작업을 한 번에 잡아보려니 보기 좋은 화면과 실제 작업 속도가 꼭 비례하지는 않았다.
바꾼 결정적 계기는 태그 정리 실패였다. 컴필레이션 앨범 120장 정도를 정리하면서 Album Artist, Artist, Discnumber가 섞여 있던 파일들을 수동으로 고쳤는데, 한 번 잘못 적용하니 앨범이 두세 개로 분리되어 보였다. 되돌리기도 번거롭고, 어떤 플레이어는 태그를 보여주기만 하고 어떤 플레이어는 수정은 가능하지만 일괄 처리가 답답했다. 그 시점에서 재생기보다 관리 도구에 가까운 플레이어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foobar2000을 고른 이유와 초반 인상
foobar2000을 다시 꺼낸 건 화려해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반대였다. 처음 실행하면 너무 단정해서 요즘 프로그램 같지 않다. 그런데 며칠만 써보면 겉모습보다 내부 구조가 훨씬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된다. 광고가 없고, 계정을 만들라고 하지 않고, 음악 파일 자체를 중심에 두고 움직인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내가 고른 이유는 세 가지였다. 첫째, 포맷 가리지 않고 재생한다는 점이다. MP3와 FLAC 정도만 되는 게 아니라 Opus, AAC, ALAC가 섞여 있어도 크게 신경 쓸 일이 없다. 둘째, gapless 재생이 안정적이었다. 공연 음원 14트랙이 끊김 없이 이어지는 것만으로도 플레이어를 바꾼 체감이 컸다. 셋째, 태그와 파일명 처리를 한 화면에서 밀어붙일 수 있었다.
처음엔 인터페이스가 투박해서 망설였다. 그런데 회사에서 쓰는 생산성 도구도 결국 오래 남는 건 보기 좋은 앱보다 흐름이 끊기지 않는 앱이었다. foobar2000은 듣는 사람을 설득하려 들지 않고, 대신 설정한 만큼 정확하게 움직인다. 과장된 추천 시스템이나 홈 화면 배너가 없다는 점도 오히려 편했다.
내가 정착한 사용 흐름: 가져오기부터 정리까지
지금은 새 음악을 받으면 거의 같은 순서로 처리한다. 먼저 File > Add folder로 작업용 폴더를 라이브러리에 넣는다. 보통 한 번에 80~150곡 정도를 가져오는데, 포맷이 섞여 있어도 바로 목록에 잡힌다. 그다음 목록에서 전체 선택 후 우클릭해서 Properties로 들어가 태그를 확인한다.
여기서 가장 많이 쓰는 건 일괄 수정이다. 예를 들어 앨범명이 비어 있거나 Album Artist가 빠진 파일이 있으면 여러 곡을 동시에 잡고 값을 넣는다. 파일명이 01 - track.mp3처럼 제멋대로일 때는 File Operations > Rename to...로 패턴을 적용했다. [%album artist%]\[%date% - ]%album%\%tracknumber% - %title% 같은 형식으로 맞춰 두면 폴더 구조가 거의 자동으로 정리된다.
음량 차이도 초반에 정리하는 편이다. 전체 선택 후 우클릭해서 ReplayGain > Scan per-file track gain 또는 앨범 단위면 Scan as albums를 돌린다. 내가 가진 1.2GB짜리 라이브 음원 묶음 9장 기준으로 스캔은 몇 분 안쪽에서 끝났고, 이후 재생할 때 곡마다 볼륨을 만질 일이 확 줄었다. 야근하면서 재생목록을 섞어 들을 때 이 차이가 크게 느껴진다.
변환 작업도 생각보다 자주 쓴다. 휴대폰에 넣을 파일만 따로 줄이고 싶을 때 Convert > ...로 들어가 출력 포맷을 AAC나 MP3로 잡고, 비트레이트를 정해 한 번에 뽑는다. 입력이 FLAC 40곡, 총 2.8GB였는데 MP3 320kbps로 바꾸니 420MB 수준으로 줄었다. 설정 저장까지 해두면 다음엔 입력, 프리셋 선택, 실행 정도의 세 단계로 끝난다.
다른 선택지와 비교하면 어디서 갈리는가
VLC와 비교하면 foobar2000은 재생기라기보다 작업대에 가깝다. VLC가 강한 쪽은 영상 포함 범용 재생과 빠른 설치다. 파일 하나 열고 바로 듣거나 네트워크 스트림을 가볍게 확인하는 용도라면 VLC가 더 부담 없다. 반면 라이브러리 관리, 태그 수정, 파일명 규칙화처럼 손이 많이 가는 일은 foobar2000 쪽이 훨씬 낫다.
MusicBee와 비교하면 취향 차이보다 사용 목적 차이가 크다. 화면 구성이 친절하고 처음부터 보기 좋은 라이브러리를 원하면 MusicBee가 더 잘 맞을 수 있다. 앨범아트 중심으로 둘러보는 재미도 있다. 대신 내가 원하는 규칙을 세세하게 밀어붙이려면 메뉴 구조보다 처리 방식이 더 중요한데, 그때는 foobar2000이 한 수 위였다.
선택 기준을 간단히 말하면 이렇다. 보기 쉬운 화면과 초반 적응 속도가 우선이면 MusicBee, 아무 형식이나 바로 재생하고 끝낼 거면 VLC, 파일 수천 개를 오래 들고 갈 생각이면 foobar2000이 맞다. 특히 로컬 음원 비중이 높고, 태그가 지저분하고, 볼륨 차이 때문에 자주 거슬렸던 사람이라면 방향이 꽤 분명해진다.
써보니 좋았던 결과와 남는 한계
정리 후 가장 먼저 달라진 건 음악을 다시 찾는 시간이 줄었다는 점이었다. 예전에는 파일 탐색기에서 폴더를 뒤지다가 그냥 재생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았다. 지금은 아티스트, 장르, 연도, 코덱 기준으로 걸러도 결과가 안정적으로 나온다. 퇴근 후 30분 정도 듣고 끝낼 때도 선택 피로가 덜하다.
듣는 품질 면에서는 gapless와 ReplayGain 조합이 만족스러웠다. 라이브 앨범이나 클래식에서 곡 사이 이음새가 자연스럽고, 재생목록을 섞어도 어떤 곡은 너무 작고 어떤 곡은 튀어나오는 문제가 줄어든다. 소리를 극적으로 바꿔 준다기보다, 거슬리는 요소를 조용히 치워 주는 쪽에 가깝다. 일할 때 계속 켜 두는 프로그램은 이런 성격이 오래 간다.
물론 한계는 분명하다. 처음 설치한 직후의 화면은 친절하지 않고, 컴포넌트까지 손대기 시작하면 초보자에게는 설정 용어가 꽤 건조하게 느껴질 수 있다. 예쁘게 꾸민 앱을 기대하면 실망할 가능성이 높다. 모바일 스트리밍 서비스처럼 추천을 받아 듣는 습관이 강한 사람에게도 맞지 않는다.
그래서 추천 대상이 명확하다. 로컬 음원이 많고, MP3나 FLAC 파일을 직접 관리하며, 태그와 폴더 구조를 자기 기준으로 정리하고 싶은 사람에게는 꽤 잘 맞는다. 반대로 음악은 검색해서 바로 틀고, 화면은 보기 쉬워야 하며, 설정에 10분 이상 쓰고 싶지 않은 사람이라면 다른 플레이어가 낫다. 내가 다시 예전 방식으로 돌아가야 한다면, 파일 탐색기에서 폴더를 뒤지며 볼륨을 손으로 맞추는 순간부터 금방 지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