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하나 고치려다 작업 방식부터 바뀌었다
업무에서 디자인 툴이 필요한 순간은 생각보다 자주 온다. 디자이너처럼 처음부터 브랜딩을 만드는 일은 아니어도, 발표 자료에 들어갈 로고를 손보거나 서비스 흐름도를 다시 그리거나, PNG로 받은 아이콘을 SVG로 비슷하게 재구성해야 할 때가 있다. 문제는 그런 작업이 매일 있는 건 아니라서, 비싼 구독형 툴을 계속 유지하기엔 부담이 크다는 점이다.
처음에는 파워포인트 도형과 온라인 편집기로 버텨봤다. 급한 수정은 가능했지만 선 두께를 일정하게 맞추는 과정이 번거로웠고, 확대했을 때 모서리가 어색해졌다. 특히 아이콘 24개를 한 화면에 정렬해 두고 색상만 버전별로 바꾸는 작업에서 한계가 확실했다. 복제는 되는데 기준선 맞추기와 간격 배분이 매번 틀어져서, 수정할수록 손이 더 갔다.
그때 찾게 된 게 Inkscape였다. 무료라는 점보다 먼저 눈에 들어온 건 SVG 중심으로 움직인다는 점이었다. 웹용 아이콘, 간단한 배너, 안내 다이어그램처럼 벡터 기반 결과물이 필요한 상황에서는 문서 구조가 분명한 쪽이 낫다. 설치형이지만 포터블 버전도 있어 외부 PC에서 급히 열어야 할 때 대응하기 좋았고, 이 부분은 생각보다 자주 도움이 됐다.
무료 툴 몇 개 써보고 Inkscape로 넘어간 이유
처음 시도한 건 Figma였다. 인터페이스는 익숙했고 협업도 좋았지만, 내가 자주 겪는 일은 실시간 공동 작업보다 로컬 파일 정리와 단순 편집에 가까웠다. 인터넷 연결이 불안정한 환경에서 대용량 이미지가 섞인 파일을 열면 반응이 미묘하게 늦어졌고, 회사 보안 정책 때문에 외부 공유 링크를 꺼리는 경우도 있었다. 화면 구성은 매끈했지만 오프라인에서 묵직하게 작업하는 느낌은 약했다.
그다음은 Affinity Designer 체험판이었다. 기능 자체는 좋았지만, 가끔 한두 번 쓰는 목적이라면 결국 비용 판단을 하게 된다. 펜툴 감각이나 내보내기 옵션은 만족스러웠지만 내가 하려던 건 복잡한 일러스트 제작이 아니라 기존 로고 수정, 안내 이미지 제작, SVG 정리 같은 반복 업무였다. 툴이 나쁜 게 아니라 과업 대비 무게가 조금 과했다.
반대로 Inkscape는 첫인상이 화려하지 않았다. 대신 작업 단위가 분명했다. 오브젝트 선택, 정렬, 그룹, 경로 변환, 노드 편집 같은 흐름이 메뉴 안에서 비교적 예측 가능하게 이어졌다. 비슷한 무료 툴 가운데서도 “조금 배워두면 다음에도 그대로 써먹을 수 있겠다”는 감각이 있었고, 바로 그 지점이 전환 이유였다.
비교하면 이런 차이가 있다. Figma는 여러 사람이 같은 파일을 동시에 만지고, UI 시안과 코멘트 중심으로 굴러갈 때 더 낫다. Inkscape는 오프라인에서 단일 산출물을 꾸준히 다듬거나 SVG 구조를 손으로 만져야 할 때 유리하다. Affinity Designer는 더 폭넓은 상업 작업에 잘 맞지만, 가끔 쓰는 사용자에게는 비용과 학습량이 함께 따라온다.
가장 많이 쓴 작업은 아이콘 세트 정리였다
가장 자주 한 일은 아이콘 묶음을 서비스 버전에 맞춰 재정리하는 작업이었다. 예를 들어 SVG 아이콘 48개를 받아서, 선 두께를 1.5px에서 2px 느낌으로 맞추고, 모서리 라운드를 통일하고, 색상을 두 가지 테마로 나누는 식이다. PNG만 받았던 경우에는 그대로 확대하면 흐릿해져서 다시 그려야 했는데, 이때 벡터 편집기가 없으면 시간이 배 이상 든다.
Inkscape에서 쓴 흐름은 대체로 일정했다. 먼저 파일 > 가져오기로 기존 PNG나 SVG를 불러오고, SVG면 그룹을 풀어 구조를 확인했다. 그다음 오브젝트 > 정렬과 배치에서 가로 간격을 통일하고, 채우기와 선 패널에서 스트로크 색상과 두께를 맞췄다. 노드가 꼬인 도형은 경로 > 단순화를 바로 쓰지 않고 복사본에서 먼저 시험해 보는 편이 안전했다. 단순화가 과하게 걸리면 원래 의도한 모서리 각도가 무너질 때가 있어서다.
작업 시간도 꽤 줄었다. 예전에는 파워포인트와 이미지 편집기를 같이 써서 아이콘 20여 개 색상 변형본 두 세트를 만드는 데 1시간 넘게 걸렸다. Inkscape로 바꾼 뒤에는 원본 정리가 끝난 상태라면 25분 안쪽에서 끝나는 경우가 많았다. 저장 형식도 SVG, PNG 둘 다 가져갈 수 있어 개발팀 전달용과 문서 삽입용 파일을 따로 만들기 쉬웠다.
여기서 중요한 건 속도보다 수정 가능성이다. 다음 주에 같은 아이콘을 다시 열어도 구조가 살아 있으니, 한 부분만 고치고 전체 정렬을 다시 돌리면 된다. 임시방편으로 만든 PNG 조합은 그때는 빨라도, 두 번째 수정부터 손해가 커진다. 반복 업무에서는 이 차이가 크게 남는다.
배치 작업과 내보내기는 생각보다 실무적이다
한 번은 교육 자료용 다이어그램 12장을 PNG로 내보내야 했다. 원본은 하나의 큰 SVG 문서에 아트보드처럼 배치해 둔 상태였고, 각 페이지를 발표 자료에 맞게 1600px 너비 이미지로 뽑아야 했다. 처음에는 화면 캡처로 처리해 보려 했지만 해상도가 들쭉날쭉했고, 텍스트 가장자리가 흐려져서 바로 포기했다.
Inkscape에서는 문서 구조만 잡아두면 반복 작업이 단순해진다. 내가 쓴 방식은 이렇다. 먼저 레이어를 페이지 단위로 나누고, 각 레이어 이름을 step-01, step-02처럼 정리했다. 그다음 필요한 부분만 보이도록 레이어를 켜고 끄면서 내보낼 영역을 확인했다. 메뉴 경로는 파일 > 내보내기였고, 여기서 페이지 전체가 아니라 선택 영역 기준으로 PNG를 뽑는 식으로 맞췄다.
입력에서 결과까지 단계로 정리하면 더 명확하다. 원본 SVG 불러오기 → 레이어 정리 → 각 도형 그룹화 → 텍스트 깨짐 여부 확인 → 내보내기 해상도 지정 → PNG 저장이다. 이 과정을 처음 세팅할 때는 15분 정도 걸렸지만, 12장 모두 뽑는 데 추가로 든 시간은 10분 남짓이었다. 파일 크기는 장당 300KB에서 900KB 사이로 나왔고, 슬라이드에 넣었을 때 선명도도 안정적이었다.
여기서 배치 자동화까지 노릴 수도 있다. Inkscape는 명령줄 옵션도 지원해서 정해진 SVG를 PNG로 변환하는 흐름을 만들 수 있다. 다만 이 기능은 초보자에게 바로 추천하진 않는다. 메뉴 기반 편집에 익숙해진 뒤, 같은 형식의 파일을 계속 다루는 사람에게 맞는 확장 단계에 가깝다.
로고 수정처럼 사소해 보이는 일에서 차이가 컸다
회사 소개서에 들어갈 오래된 로고를 손본 적이 있다. 원본이 EPS로만 남아 있었고, 담당자가 원하는 건 색상 한 단계 조정과 자간 미세 수정 정도였다. 겉으로는 단순한 수정이지만, 파일을 열 수 없거나 폰트가 깨지면 바로 일이 커진다.
이럴 때 Inkscape가 만능은 아니지만 꽤 버텨준다. EPS나 PDF 계열 파일을 열어 구조를 확인하고, 텍스트가 살아 있으면 폰트를 대체하거나 경로로 변환해 유지할 수 있다. 내 경우에는 글자가 완전히 같은 폰트로 복원되진 않았고, 결국 제목 글자 6개는 경로로 변환된 형태를 노드 편집으로 조금 다듬었다. 손이 가긴 했지만, 적어도 파일을 못 열어서 작업 자체가 막히는 일은 피했다.
이 과정에서 실패도 있었다. 처음에는 자동 추적 기능으로 로고를 다시 따려고 했는데, 단색 로고인데도 곡선 끝부분에 불필요한 노드가 지나치게 많아졌다. 확대해 보니 원형처럼 보여야 할 부분이 미세하게 울퉁불퉁했고, 인쇄용으로 넘기기엔 찜찜했다. 그래서 자동 추적을 버리고 기본 도형과 베지어 곡선으로 다시 구성했다. 20분 더 걸렸지만 결과물은 훨씬 깔끔했다.
여기서 판단 기준이 생긴다. 원본 품질이 낮은 JPG 한 장뿐이면 자동 추적으로 출발해도 된다. 다만 최종 결과가 로고, 간판, 인쇄물처럼 확대 사용을 전제로 한다면 직접 재구성하는 편이 낫다. 반대로 내부 문서용 안내 아이콘 정도라면 완벽한 노드 구조까지는 과투자일 수 있다.
누구에게 맞고, 어디서 불편한가
Inkscape는 무료라서 쓰는 프로그램이라기보다, 벡터 작업 빈도와 예산이 애매한 사람에게 특히 맞는 편이다. 마케팅 담당자, 기획자, 1인 사업자, 개발자처럼 디자인 전업은 아니지만 SVG와 PNG를 계속 다뤄야 하는 사람이라면 배워둘 가치가 있다. 간단한 로고 수정, 다이어그램 제작, 아이콘 재정리, 웹용 그래픽 준비까지는 충분히 소화한다.
반대로 처음부터 고급 상업 일러스트를 대량으로 만들거나, 팀 전체가 특정 상용 툴 포맷에 강하게 묶여 있다면 답답할 수 있다. 인터페이스가 세련됐다고 말하긴 어렵고, 메뉴 위치가 직관적으로 느껴지지 않는 순간도 있다. 큰 파일에서 반응이 둔해지는 경우도 있었는데, 내가 80MB가 넘는 복합 SVG를 열었을 때는 팬과 줌이 즉각적이지 않았다. 메모리 사용량도 작업이 길어지면 제법 올라가서 다른 프로그램을 많이 켜 둔 상태에서는 신경이 쓰였다.
추천 여부는 결국 작업 성격으로 갈린다. 한 달에 몇 번이라도 벡터 수정이 생기고, 파일을 로컬에서 다뤄야 하며, 결과물을 SVG나 PNG로 안정적으로 관리하고 싶다면 써볼 만하다. 반대로 협업 코멘트 중심의 화면 설계가 핵심이라면 Figma 쪽이 더 맞고, 고급 상업 디자인이 주력이라면 처음부터 다른 선택지를 보는 게 맞다. 내가 굳이 권하지 않을 상황은 하나다. 벡터 편집을 전혀 배울 생각은 없는데 당장 로고 하나만 급히 고치고 끝낼 사람이라면, 학습 시간까지 포함했을 때 이쪽이 최선은 아닐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