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아주 사소한 반항심이었다
매달 빠져나가는 MS 오피스 구독료를 볼 때마다 왠지 모를 거부감이 들었다. 사실 내가 쓰는 기능이라고 해봐야 화려한 애니메이션이 들어간 피피티도 아니고, 엄청난 매크로가 돌아가는 엑셀 시트도 아니다. 그냥 글 좀 쓰고, 가끔 표 좀 만들고, 숫자 몇 개 더하는 게 전부인데 굳이 이 돈을 내야 하나 싶었다. 그래서 대안을 찾기 시작했다. 구글 문서는 웹 기반이라 인터넷 안 터지는 곳에선 불안하고, 한컴오피스는 hwp 위주라 범용성이 좀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그러다 눈에 들어온 게 바로 ‘Apache OpenOffice’였다. 무료인데다 오픈 소스, 게다가 MS 오피스 대체제로 워낙 유명하다니까 ‘이거면 충분하겠지’라는 가벼운 마음으로 다운로드 버튼을 눌렀다.
설치 파일을 기다리며 설명서를 대충 훑어봤다. 워드, 엑셀, 파워포인트에 대응하는 프로그램들이 다 있고, 심지어 그림 그리는 도구랑 데이터베이스까지 들어있단다. ‘이런 혜자 프로그램이 왜 이제야 내 눈에 띄었지?’ 싶었다. 처음 프로그램을 실행했을 때의 느낌은… 음, 마치 2000년대 초반으로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간 기분이었다. 요즘 유행하는 매끈하고 얇은 아이콘 대신, 큼직하고 원색적인 아이콘들이 나를 반겼다. 촌스럽다기보다는 ‘아, 나 이거 옛날에 써본 것 같은데’ 하는 묘한 익숙함이 먼저 다가왔다.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내 업무의 모든 불편함이 이 프로그램 하나로 해결될 줄 알았다.
첫 번째 삐걱거림: .docx라는 벽
가장 먼저 ‘Writer’를 켰다. 워드 대신 쓸 물건이다. 인터페이스가 직관적이라 적응하는 데 5분도 안 걸렸다. 메뉴 위치가 예전 워드 2003 시절이랑 비슷해서 오히려 요즘의 리본 메뉴보다 찾기가 쉬웠다. 신나게 글을 쓰고 저장하려는데 여기서 첫 번째 고비가 왔다. 기본 저장 형식이 .odt였다. 나 혼자 볼 거라면 상관없지만, 이걸 거래처에 보내야 하는데 그쪽에서 .odt를 열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당연히 ‘다른 이름으로 저장’을 눌러 .doc 형식을 찾았다.
그런데 아뿔싸, .docx 형식이 보이지 않았다. .doc(Word 97/2000/XP)는 있는데, 요즘 표준인 .docx가 리스트에 없었다. 순간 당황했다. ‘설마 지원을 안 하나?’ 찾아보니 읽기는 되는데 쓰기에서 완벽한 .docx 저장은 조금 까다롭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일단 급한 대로 .doc로 저장해서 보냈는데, 얼마 뒤 메신저가 왔다. “저기, 문서 레이아웃이 다 깨졌는데요? 표 안에 글자가 밖으로 튀어나와 있어요.” 확인해보니 내가 정성 들여 맞춘 줄 간격과 표 테두리가 상대방 화면에선 엉망진창이었다. 기술적으로 지원한다고 해서 그게 ‘완벽한 호환’을 의미하는 건 아니라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 결국 그날은 다시 유료 오피스를 켜서 수정 작업을 해야 했다. 시작부터 맥이 탁 풀리는 순간이었다.
휴대성에 눈이 멀어 선택한 잘못된 길
실패를 한 번 겪고 나니 오기가 생겼다. ‘제대로 써보지도 않고 포기할 순 없지’ 하는 마음에 이번에는 포터블 버전을 시도해보기로 했다. 설치 없이 USB에 담아서 어디서든 쓸 수 있다는 점이 너무 매력적이었다. 회사 컴퓨터에 프로그램을 깔기 눈치 보일 때 딱 좋겠다 싶었다. 그래서 굳이 잘 깔려 있던 설치판을 지우고 포터블 버전을 구해서 USB에 넣었다.
그런데 이게 화근이었다. 내 USB가 문제인 건지, 프로그램 특성인지 몰라도 실행 속도가 처참했다. 아이콘을 클릭하고 커피 한 잔을 타 와도 여전히 로딩 바가 반도 안 차 있었다. 게다가 문서 하나 여는데도 ‘응답 없음’이 수시로 떴다. 결정적으로 폰트 문제가 터졌다. 내 컴퓨터에 깔린 예쁜 폰트들을 포터블 버전이 제대로 인식하지 못해서, 모든 문서가 굴림체나 바탕체로 강제 변환되어 출력됐다. “어디서나 쉽게 사용할 수 있다”는 말만 믿고 내 시스템 환경을 고려하지 않은 판단 착오였다. 결국 세 시간 동안 끙끙대다가 다시 설치판으로 돌아왔다. ‘편하려고 시작한 일인데 왜 더 고생하고 있지?’ 하는 독백이 절로 나왔다. 하지만 이왕 칼을 뽑았으니 엑셀… 아니, ‘Calc’까지는 가보기로 했다.
스프레드시트와의 사투, 그리고 뜻밖의 발견
나는 매주 업무 보고용 데이터를 정리한다. 수식이 복잡하진 않지만 vlookup이나 pivot table 정도는 써야 한다. OpenOffice의 Calc를 켰을 때 가장 큰 문제는 ‘손가락 기억’이었다. 엑셀에서 무의식적으로 누르던 단축키들이 여기선 작동하지 않거나 다른 기능을 수행했다. 특히 함수 입력 시 인수를 구분하는 세미콜론(;)과 콤마(,)의 차이 때문에 계속 에러 메시지를 봐야 했다.
데이터 양이 꽤 되는 시트를 불러왔더니 스크롤이 뚝뚝 끊겼다. ‘이걸로 분석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하지만 여기서 포기하면 진짜 지는 거라는 생각에 일단 붙잡고 늘어졌다. 메뉴를 하나하나 뒤져가며 엑셀의 기능을 찾아 매칭시켰다. 그러다 보니 의외의 장점도 보였다. 그래프 만드는 도구가 생각보다 직관적이었다. 엑셀은 가끔 너무 자동화되어 있어서 내가 원하는 세밀한 조절이 안 될 때가 있는데, 여기 ‘Chart’ 기능은 좀 투박해도 내가 건드리는 대로 정직하게 모양이 바뀌었다. 3D 일러스트 기능인 ‘Draw’와 연동해서 다이어그램을 그려 넣으니 제법 그럴듯한 보고서가 완성됐다. 비록 과정은 험난했지만, ‘무료 툴로도 이 정도까지는 뽑아낼 수 있구나’ 하는 성취감이 아주 살짝 들었다.
그렇다고 마냥 좋았던 건 아니다. 데이터베이스 기능인 ‘Base’는 시도해보려다 금방 덮었다. 이건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난이도가 아니었다. 쿼리를 짜고 테이블을 만드는 과정이 요즘의 사용자 친화적인 툴과는 거리가 멀었다. 전문가라면 유용하게 쓰겠지만, 나처럼 ‘업무 불편함 줄이기’가 목적인 사람에게는 오히려 또 다른 공부 거리를 던져주는 꼴이었다.
LibreOffice와 비교하며 느낀 묘한 위치
사실 OpenOffice를 쓰다 보면 자연스럽게 LibreOffice가 떠오른다. 둘 다 뿌리는 같은데, 지금은 LibreOffice가 업데이트도 더 빠르고 기능도 많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실제로 써보니 확실히 LibreOffice가 더 ‘요즘 프로그램’ 같긴 하다. 하지만 OpenOffice 특유의 가벼움(로딩 속도 말고, 프로그램 자체가 차지하는 리소스)은 무시 못 할 매력이 있다. 구형 노트북이나 사양이 낮은 사무용 PC에서는 오히려 이 투박한 프로그램이 더 안정적으로 돌아갈 때가 있다.
UI 측면에서도 호불호가 갈릴 것 같다. LibreOffice는 어떻게든 현대적인 오피스를 따라가려 애쓰는 느낌이라면, OpenOffice는 “우리는 그냥 우리가 하던 방식대로 갈게”라고 말하는 뚝심 있는 장인 같다. 어떤 상황에서는 이게 더 편하다. 메뉴가 바뀌지 않으니 한 번 익히면 평생 쓸 수 있을 것 같은 신뢰감이 든다. 하지만 협업이 잦은 환경이라면? 아까 말했듯이 지옥이 펼쳐질 수 있다. 혼자서 완결 짓는 보고서를 쓰거나, 개인적인 가계부, 일기장 등을 관리하기에는 이만한 도구가 없지만, 실시간으로 파일을 주고받아야 하는 팀 프로젝트에서는 여전히 ‘민폐’가 될 가능성이 농익어 있다.
결국 나는 정착했을까?
일주일간의 사투 끝에 내린 결론은 의외로 담백하다. “완전한 대체는 불가능하지만, 훌륭한 보험은 된다”는 것이다. 나는 여전히 메인 업무에는 유료 오피스를 쓴다. 거래처와의 호환성 문제는 내 의지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집에서 개인적인 초안을 잡거나, 무거운 프로그램 띄우기 싫을 때 가볍게 메모장 대신 Writer를 켜는 습관이 생겼다. 특히 Draw 기능은 간단한 순서도 그릴 때 꽤 유용해서 자주 손이 간다.
아직 해결되지 않은 불편함은 여전하다. 고해상도 모니터에서 아이콘이 깨져 보이는 문제라든지, 최신 파일 형식과의 완벽하지 않은 궁합 같은 것들 말이다. 이건 아마 내가 계속 안고 가야 할 숙제일 것이다. 누군가 나에게 이 프로그램을 추천하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상황에 따라 다르다”고 대답할 것 같다. 돈을 아끼는 게 지상 과제이고 혼자 작업하는 시간이 많다면 추천하지만, 1분 1초가 급한 마감 직전의 직장인에게는 차라리 구독료를 내는 게 정신 건강에 이롭다고 말해주고 싶다.
결국 완벽한 도구는 없다. 내가 그 도구의 성격을 얼마나 잘 이해하고 적재적소에 배치하느냐의 문제일 뿐. OpenOffice는 나에게 ‘무조건 비싼 게 정답은 아니다’라는 교훈과 함께, 2000년대의 향수, 그리고 약간의 인내심을 선물해주었다. 앞으로도 이 투박한 아이콘들을 내 바탕화면에서 완전히 치우지는 않을 것 같다. 가끔은 이 정직하고 느릿한 도구가 주는 안정감이 필요할 때가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