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아주 사소한 짜증으로부터
업무를 하다 보면 정말 별거 아닌 것 같은데 사람 신경을 긁는 순간들이 있다. 나에게는 그게 바로 압축 파일이었다. 예전에는 플로피 디스크 몇 장에 파일을 나눠 담으려고 애쓰던 시절도 있었고, WinZip이나 WinRAR 같은 프로그램들이 당연한 기본값이었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인가 윈도우 기본 압축 기능은 너무 느리고, 다른 외산 프로그램들은 인터페이스가 너무 낡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특히 한국 특유의 그 ‘ALZip’ 환경에서 만들어진 파일들을 받을 때마다 글자가 깨지는 문제는 정말 참기 힘든 스트레스였다. 그래서 뭔가 새로운 대안이 필요했다. 직관적이면서도 강력한 것. 그렇게 반디집(BandiZIP)을 처음 설치하게 됐다. 처음에는 그냥 ‘국산이니까 좀 낫겠지’ 하는 가벼운 마음이었다.
첫 번째 삽질: 과유불급의 컨텍스트 메뉴
설치하자마자 내가 제일 먼저 했던 건 설정 창을 뒤져서 모든 기능을 켜는 것이었다. 반디집의 큰 장점 중 하나가 마우스 오른쪽 버튼 메뉴(컨텍스트 메뉴)를 내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다는 점인데, 여기서 내 욕심이 화를 불렀다. ‘알아서 풀기’, ‘여기에 풀기’, ‘각각 폴더에 풀기’, ‘7z으로 압축하기’, ‘파일명으로 압축하기’ 등등… 거의 10개가 넘는 옵션을 메뉴에 몽땅 때려 박았다.
결과는 처참했다. 마우스 오른쪽 클릭을 할 때마다 메뉴가 뜨는 속도가 눈에 띄게 느려졌고, 무엇보다 내가 뭘 눌러야 할지 나조차도 헷갈리기 시작했다. ‘그냥 압축 풀면 되는 거 아냐?’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업무 중에는 1초라도 빨리 파일을 확인해야 하는데 메뉴 뭉치 사이에서 눈동자를 굴리는 그 시간이 너무 아까웠다. 결국 일주일도 못 버티고 설정을 초기화했다. 내가 뭘 원했는지 다시 고민해야 했다. 결국 ‘알아서 풀기’와 ‘파일명으로 압축하기’ 딱 두 개만 남기고 나머지는 2차 메뉴로 숨겨버렸다. 기술적으로 대단한 오류는 아니었지만, 도구를 내 손에 맞추려다 오히려 손을 다친 격이었다. 역시 단순함이 최고라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
두 번째 고비: 멀티코어의 배신과 I/O 병목
반디집의 무기 중 하나는 ‘멀티코어 압축’이다. CPU를 다 끌어다 써서 속도를 높인다는 그 설명이 너무 매력적이었다. 마침 서버 백업용 로그 파일 100GB 정도를 압축해야 할 일이 생겼다. 나는 자신만만하게 반디집을 켜고 멀티코어 설정을 최대치로 높였다. ‘이거면 금방 끝나겠지’라며 실행 버튼을 눌렀다.
그런데 예상과 전혀 다른 일이 벌어졌다. 압축 속도가 올라가기는커녕, 내 노트북 전체가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마우스 커서는 뚝뚝 끊기고, 크롬 창 하나 띄우는 데도 한참이 걸렸다. 알고 보니 문제는 CPU가 아니라 디스크 I/O였다. 내 외장 하드 드라이브의 읽기/쓰기 속도가 반디집이 데이터를 뿜어내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던 거다. CPU는 90%를 넘나드는데 하드디스크는 비명을 지르며 멈춰버렸다. 결국 압축은 중간에 에러를 뿜으며 멈췄고, 나는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했다. 이때 깨달았다. 아무리 좋은 도구라도 내가 처한 하드웨어 환경을 무시하고 몰아붙이면 독이 된다는 걸. 결국 멀티코어 할당량을 절반으로 줄이고서야 겨우 작업을 끝낼 수 있었다. 7-Zip 같은 프로그램이었다면 CLI 환경에서 더 세밀하게 조절했겠지만, 반디집의 직관적인 UI가 오히려 나를 방심하게 만든 면도 있었다.
결정적 순간: 깨진 글자들과의 사투
압축 프로그램의 본질은 결국 ‘잘 풀리는 것’이다. 한 번은 일본 협력사에서 보낸 자료를 받았는데, 파일명들이 전부 외계어처럼 깨져서 들어왔다. 예전 같았으면 인코딩 설정 때문에 한참을 헤매거나 다른 프로그램을 깔았겠지만, 반디집의 코드페이지 변환 기능이 생각났다. 압축을 풀기 전 미리보기 화면에서 코드페이지를 ‘일본어’로 바꾸니 거짓말처럼 글자들이 제대로 돌아왔다.
이 과정에서 느껴진 감정은 일종의 안도감이었다. ‘아, 드디어 도구다운 도구를 만났구나’ 하는 느낌. 사실 이 기능은 다른 프로그램에도 있을 수 있지만, 반디집은 그걸 찾는 과정이 매우 자연스럽다. 파일 목록을 보다가 ‘어, 깨졌네?’ 싶으면 바로 옆의 메뉴에서 언어를 바꿀 수 있다. 여기서 내 판단은 굳어졌다. 광고가 나오든 뭐가 어쨌든, 적어도 내 업무 흐름을 끊지 않고 문제를 해결해준다는 점에서 이 녀석은 합격이었다. 특별한 기술적 분석보다는 이 ‘흐름의 유지’가 나에게는 훨씬 중요했다.
다른 도구들과의 비교: 7-Zip은 너무 차갑고, WinRAR은 너무 멀다
사실 7-Zip도 훌륭하다. 오픈소스고, 광고도 없고, 압축률도 좋다. 하지만 너무 ‘공학적’이다. 인터페이스는 90년대에 멈춰있고, 일반적인 사용자가 쓰기에는 지나치게 불친절하다. 반면 반디집은 메인 화면의 그 큼직한 버튼 두 개가 주는 심리적 안정감이 있다. ‘압축하기’, ‘압축 풀기’. 고민할 필요가 없다.
반면 유료 프로그램인 WinRAR과 비교하면 반디집은 확실히 가볍다. 하지만 최근의 반디집은 조금 상황이 다르다. 무료 버전에서 툭툭 튀어나오는 광고 팝업은 솔직히 말해서 좀 짜증 난다. 집중해서 작업하다가 하단에 뜨는 광고를 보면 ‘아, 그냥 결제할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하지만 결제를 하려니 또 고민이 된다. 압축 프로그램에 이 정도 금액을 태우는 게 맞나 싶기도 하고. 7-Zip으로 돌아가 볼까 싶다가도 그 불친절한 화면을 생각하면 다시 반디집을 켜게 된다. 결국 편리함을 담보로 광고를 참아내느냐, 아니면 돈을 내고 평화를 얻느냐의 문제인데, 나는 아직 그 중간 어디쯤에서 머뭇거리고 있다.
아직 끝나지 않은 적응기
반디집은 확실히 잘 만든 프로그램이다. 디자인은 깔끔하고, 기능은 강력하며, 무엇보다 한국적인 사용 환경에 최적화되어 있다. 하지만 완벽하지는 않다. 광고의 존재는 여전히 사용자 경험을 갉아먹고 있고, 가끔 대용량 파일을 다룰 때의 불안정함도 아주 없지는 않다.
어떤 상황에서는 7-Zip의 무식할 정도의 가벼움이 그리울 때가 있고, 또 어떤 때는 윈도우 11의 기본 압축 기능이 좀 더 똑똑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한다. 결국 정답은 없는 것 같다. 그냥 그때그때 내 스트레스를 덜어주는 도구를 선택할 뿐이다. 지금은 반디집이 그 역할을 하고 있지만, 내일 또 어떤 새로운 프로그램이 나오거나 윈도우 업데이트가 내 뒤통수를 칠지 모르는 일이다. 광고를 볼 때마다 툴툴거리면서도 여전히 마우스 오른쪽 버튼을 눌러 반디집 아이콘을 찾는 내 모습이 조금 우습기도 하지만, 이게 현재의 최선인 것만은 분명하다. 완전히 해결되지 않은 광고 문제와 가끔씩 터지는 I/O 병목 문제는 앞으로도 내가 안고 가야 할 숙제로 남아있다.